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일톤 세나 (문단 편집) ==== 1989 시즌 ==== [[파일:senna 16.jpg|width=1000]] [[파일:Sennaprostcrash1989-1.jpg]] [[파일:Sennaprostcrash1989-2.jpg|width=1000]] (47랩째, 카시오 시케인에서 충돌한 세나와 프로스트.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서의 프로스트의 표정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세나와 프로스트의 경쟁이 극에 달한 89년 시즌. 여전히 맥라렌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고 MP4/4만큼은 아니지만 MP4/5 또한 압도적인 스피드를 자랑했다. 엔진은 V6 터보에서 자연흡기 V10으로 변경되었다. 챔피언 등극 이후 세나의 실력은 완전히 무르익어 예전처럼 불안정한 멘탈을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세나와 프로스트의 관계는 완전히 뒤바뀌었는데 세나의 챔피언쉽 우승 이후 프로스트가 완전히 경쟁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세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경쟁구도는 나날히 심해져 맥라렌은 어느 그랑프리에서 누가 어떤 엔진을 쓸 것인지 공평하게 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팀 내 분위기는 매우 치열해지고 동시에 빠르게 차가워져 갔다. 프로스트는 세나가 너무 과열적이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나에게 불만을 가졌고 세나는 반대로 프로스트에게 항상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기 결과에 대해 핑계를 댄다고 불만을 가졌었다. 팀원들도 그런 둘의 주장에 둘로 쪼개지기 시작하며 팀은 더 이상 '''정보와 인력을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둘 사이 반목의 주 원인은 둘의 드라이빙 스타일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세나는 항상 [[모 아니면 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승리를 위해 위험도 서슴치 않는 스타일이었고 프로스트는 계산을 통한 레이스를 하며 우승이 힘들 것 같으면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얻는 스타일이었다. 이후 둘은 완전히 틀어져 얘기조차 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당시 서로를 쳐다보는 표정을 보면 정말 살벌하기 짝이 없을 정도. 어쨌든 세나와 프로스트는 서로 우승을 주고 받으며 챔피언쉽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또 운명적이게도 둘의 챔피언쉽 향방은 일본 그랑프리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프로스트는 리타이어 3번, 세나는 리타이어 5번으로 세나가 포인트에서 많이 불리한 상황이었고 때문에 세나는 반드시 일본 그랑프리를 우승해 챔피언쉽을 끝까지 끌고 가야만 했다. 동시에 프로스트 또한 세나가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면 자신이 챔피언을 확정 짓는 상황이었다. 그리드는 세나의 폴 포지션, 프로스트가 2위였다. 하지만 스타트에서 프로스트가 세나를 제치며 스즈카 1번 코너로 들어가게 된다. 운명의 45랩째, 팽팽한 꼬리 물기 끝에 시케인 직전에 프로스트 뒤에까지 붙은 세나는 바로 메인스트레이트 직전 시케인에서 프로스트에게 추월을 시도했으나... || [youtube(xLI6fOG3WdI?t=708)] || || '''11분 48초부터.''' || '''47랩, 그들은 거의 마지막 코너에서 충돌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이 발생하는데, 둘 다 모두 시동이 꺼지고 만 것. 만약 여기서 둘 다 리타이어 한다면 프로스트의 챔피언이 확정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차에서 내려 리타이어했지만, 세나는 다시 시동을 걸어 시케인 옆 탈출로로 나와 서킷에 복귀했다.''' 빡친 프로스트는 곧장 [[심판(스포츠)|심판진]]에게 달려갔으나, 세나는 프론트윙이 파손된 상황에서 그대로 차를 끌고 가 피트에 복귀해 윙을 교체하고 서킷에 들어왔다. 그 사이 선두를 놓쳐버리게 된 상황이라 랩타임을 끌어올린 세나는 51랩때 똑같은 카시오 시케인에서 아슬아슬하게 인을 파고들어 선두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대로 그랑프리 우승. 여기까지는 좀 찝찝해도 문제가 없는 듯 했으나 이상하게도 시상식이 한참이 지나도 시작되지 않는 일이 생겼다. 세나가 충돌 사건과 관련해서 프로스트와 같이 불려간 것이다. 그리고 면담 끝에 내려진 심판 측 발표는 '''"세나를 실격 처리한다."''' 였다. 이유는 시케인 충돌 후, 세나가 시케인을 통과하지 않고 인정되지 않는 코스를 통해 서킷에 복귀했다는 것. 그렇게 알랭 프로스트는 챔피언을 확정지었고 세나는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여기에 대해선 당시 굉장한 논쟁이 이어졌는데, 시케인으로 복귀하진 않았지만 옆에 장애물이 있는 복귀용 코스를 통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맥라렌 측), 세나가 이미 공간을 선점한 후 라인을 바꾸고 있는 와중에 끼어들어 사고를 일으켰다는 주장(프로스트 측)이 엇갈렸다. 특히 맥라렌이 공식적으로 세나의 처리에 대해 항소함으로 프로스트는 당시 팀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때의 FISA의 행동이 비판받는 이유는 실격 그 자체보다도 실격을 시킨 사유에 있다. 세나가 레이트 브레이킹을 걸어 자리를 억지로 차지했다거나, 사고 이후에 세나 자신이 혼자서 출발한 것이 아닌 마셜들이 밀어주면서 출발했다는 것 등의 실격 사유로 인정될 만한 것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나 FISA는 굳이 애꿎은 런오프에 빠지지 말고 트랙에 복귀하라고 만들어 놓은 이스케이프 로드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실격을 시켜 버려서 억지스러움을 가중시켰다는 것.] 특히 세나는 당시 FISA[* F1 대회를 운영하는 현 FIA의 전신] 회장인 장-마리 발레스트르가 같은 프랑스인 드라이버인 프로스트를 위해 레이스에 부당한 개입을 했다고 믿고 있었던 듯 하다. 물론 프로스트가 그렇게 비열한 사람은 아니지만 당시 상황을 세나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이후 세나는 항소에서 패배했고 레이스에서 위험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추가로 10만 달러의 벌금과 드라이버 면허를 6개월간 정지당하는 중징계도 받았다. 그렇게 세나는 1989 시즌을 굉장히 불쾌하게 마감했다. 퀄리파잉을 거의 휩쓸고 우승도 많이 하며 성적면에서는 나쁠 게 없었지만 정치적으로 휘말림으로 좋지 못한 시즌이었다. 최종 성적 60포인트 종합 2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